웅크리고 있던 모든 것들이 기지개를 켜는 봄이다. 무채색의 풍경은 알록달록 화려한 색으로 채워지고, 봄을 즐기려는 상춘 인파로 여기저기 시끌벅적하다. 오늘은 나만의 특별한 여행을 즐기고 싶은 분들을 위해 숲(산림욕), 온천(온천욕), 바다(해수(풍)욕)를 통해 삼욕을 즐길 수 있는 울진의 봄 여행 코스를 소개한다. 숲을 걸어 봄! 신선계곡 온정면 백암산 아래 깊고 푸른 골짜기 신선계곡. 선시골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신선이 놀던 곳과 같다고 해서 신선계곡이라 불려진다고 전해온다. 계곡전체에 소나무와 참나무가 가득하고 계곡물과 어우러진 갖가지 형상 들의 바위들이 비경을 이루는 곳이다. 신선계곡에 들어서면 깊은 산속에 보기 힘든 웅장한 벽화를 만날 수 있다. 울진 금장광산의 광물찌꺼기 유실 방지 사업으로 세워진 콘크리트 벽에 울진 금강송을 테마로 그려진 벽화이다. 처음 그려졌을 때 보다는 빛이 바래기는 했지만 사실적으로 그려진 옹벽의 벽화는 살아있는 자연과 어우러져 묘한 매력을 선사하며 나름의 포토존 역할을 하고 있다. 계곡 대부분이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는 신선계곡은 산행 초보자들도 어려움 없이 오를 수 있다. 탐방로 대부분이 나무데크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한때 최고의 번성기를 누렸던 항구가 있었다. 자연의 축복을 받아 각종 어종이 풍부했고, 그 덕분에 사람이 드나들고 물자가 오가며 이름을 떨쳤다. 포항 구룡포항, 경주 감포항과 함께 동해 남부의 중심 어항 역할을 했던 울진 죽변항 이야기다. 내년이면 개항 100주년을 맞아, 죽변항은 새로운 비상을 꿈꾸고 있다. 동해의 거친 바다를 닮은 투박함 속에 부드러운 매력이 숨어 있는 죽변항으로 초대한다. ◆ 죽변항의 옛이야기 지난 2010년 죽변면 죽변리에서 유물이 발견됐다. 조기 신석기시대(기원전 6000년경)에 낚싯배로 쓰인 목재 선박과 노 등이었는데, 당시 이 일대에 사람들이 있었고 어업 생활상을 보여주는 획기적인 발견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이민 이주 정책으로 일본인들이 죽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후 어항의 모습을 갖추고 출어가 합법화되고, 항구의 기반이 되는 등대가 세워졌다. 이처럼 사람들은 고대부터 오랫동안 죽변항 주변에 터를 잡고 바다와 함께 살아왔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살기 좋은 자연환경이 큰 역할을 했으리라 짐작된다. 죽변지역은 해류의 영향으로 사계절 비교적 온난한 편이다. 이로 인해 좋은 어장이 형성될 수 있었고, 예로부터 수산물이 풍부했
황금빛 물결에 오색찬란한 빛이 산천을 물들이며 화려했던 시간도 잠시. 제법 차가워진 바람에 계절의 변화가 느껴지는 12월이다. 조금은 쓸쓸함이 느껴지는 이맘때, 생기 넘치는 여행이 필요하다면 울진이 제격이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울진의 명물, 붉은대게의 계절이 시작됐기 때문인데. 울진 후포항에서 여행을 즐겨 보자. 붉은대게, 푸른 동해를 황홀하게 물들이다 때 이른 추위가 찾아온 어느 아침, 후포항에서 비릿한 바다내음과 함께 큰 배 가득 붉은대게를 싣고 들어오는 어선을 만났다. 흔히 ‘홍게’라 부르는 붉은대게는 말 그대로 몸 전체가 붉은색을 띠며 수심 1,000m~2,500m에 서식하는 어종이다. 9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잡을 수 있는데 가을빛이 절정에 달한 11월부터가 성어기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겨울철 대게를 일미로 꼽지만, 제철 붉은대게는 대게 못지않게 귀한 별미이다. 또, 대게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오랫동안 즐길 수 있다는 것도 큰 매력이다. 하지만 대중적인 가격에 비해 붉은대게를 잡는 일은 여간 수고스러운 게 아니다. 먼바다까지 나가야 하기에 한 번 나서면 길게는 8일까지 머문다는 붉은대게 조업. 요즘 평균 어획량은 2-3천마리 선이다. 예전 한창
최근 울진을 비롯한 많은 농촌 지역이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 사람들이 떠나니 생활 필수시설을 비롯해 문화·복지 인프라도 점점 축소되고 있다. 과거보다는 나아졌다고 하지만 교통 취약지역도 여전히 존재한다. 이른바 ‘지역 소멸’이 가속화되는 현재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선 인구감소를 막고, 인구유입을 이끌어낼 수 있는 농촌의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사람이 ‘살고 싶은’ 농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도시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지만 울진과 같은 농촌 지역에서는 아직까지 찾아보기 힘든 도심지의 생활 인프라를 구축해 살기 좋은 농촌을 만드는 것이 바로 농촌 협약 및 농촌 공간 정비사업이다. ◆ 농촌 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 농촌협약 및 농촌공간 정비사업 #1. 울진군 울진읍에 사는 70대 A씨. 요즘 매일 울진읍사무소로 출근도장을 찍는다. 얼마 전, 울진읍사무소가 문화와 복지 기능을 결합한 복합센터로 새 단장했기 때문이다. A 씨는 월·수요일은 어르신 요가 체조교실을, 화·목요일은 도자기 수업을 듣는다. 어르신 맞춤 강좌라 수강생이 많다 보니, 수업마다 분위기도 좋은 편이다. 무엇보다 정기적인 건강 상담과 관리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역대 최장인 213시간 동안 이어지며 이재민 328세대, 산림피해14,140ha, 피해복구금액 약 3,027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피해를 남긴 울진산불. 피해 복구를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자원이 필요한 막막한 상황이지만 울진군은 태풍 미탁을 비롯한 재난재해를 슬기롭게 대처한 경험을 되살려 위기에 강한 울진군의 저력으로 피해복구에 힘을 다하고 있다. 군은 피해주민의 생활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정하고 주불진화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대책회의를 진행하였으며, 담당 부서의 복구 진행사항 등을 지속적으로 확인하며 신속한 복구가 이루어 질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고 있다. 특히, 산불 진화 한 달여 만에 이재민의 약 70%(약 130세대)가 임시주거시설에 입주를 완료하는 등 비슷한 사례의 타 지역에서 산불이후 이재민 주거안정에 수개월이 걸린 것에 비해 울진군은 이재민의 심신안정에 발 빠르게 대처 한 결과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박형수 국회의원(영주·영양·봉화·울진)과 함께 중앙부처 등을 수없이 방문하여 울진군의 상황을 설명하고 피해에 대한 예산지원을 건의하는 등 지원방안 마련에 적극적인 행보를 진행한 결과, 공공시설 복구에 사용할 수 있는 재난안전 특별교부세 항구
울진 대게의 유래는 신증동국여지승람 제 45권 평해군편 및 울진현편의 기록에 의하면 "대게"를 자해(紫蟹)라 표기하고 있고, 옛날부터 주요한 특산물로 "대게"가 포함되어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 대게의 중국명 또는 한자어는 죽해(竹蟹),대해(大蟹),발해(拔蟹)등으로 불리는데, 대게란 이름은 몸체가 크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 아니라 몸통에서 뻗어 나간 다리의 모양이 대나무처럼 곧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게는 보통 황금색,은백색,분홍색,홍색 등 색깔에 따라 4종류로 구분하는데 진짜 대게는 황금색이 짙은 "참대게" 또는 "박달게"를 말하며, 다리가 여섯 마디라 해서 옛날에는 "육촌(六寸):이라고도 하고, 대나무 모양과 비슷하다고 해서 "죽촌(竹寸)" 또는 "죽육촌(竹六寸)"이라고도 불려져 왔다. 대게의 암컷은 수컷보다 몸체가 훨씬 작아 찐빵만 하다 하여"빵게"라고 부르기도 한다. 울진보다 영덕이 대게의 명산지로 알려진 것은 1930년대 교통수단이 원할 하지 못하던 당시 서울, 대구,포항, 안동 등 대도시에 해산물을 공급하기 위해 교통이 편리한 영덕으로 중간 집하되어 반출 하였음으로 집하지인 영덕의 지명을 사용 영덕대게로 불려져 오고 있으며 임원경제지에 의하면
관동팔경 중 제일 남쪽에 위치한 월송정(越松亭)은 팔작지붕 주심포, 고상누각으로 고려시대에 창건되었고, 조선중기 관찰사 박원종(朴元宗)이 중건하였으나 세월이 흘러 퇴락되었던 것을 1933년 향인(鄕人)황만영(黃萬英)등이 다시 중건 하였다. 그후 일제말기 제2차 세계대전 중 적기(연합군)내습의 목표가 된다하여 월송주둔 일본군에 의해 철거당하여 폐허가 되었던 것을 1969년 4월 평해·기성·온정면 출신의 재일교포로 구성된 금강회(金剛會)의 후원을 받아 철근2층콘크리트의 현대식 건물로 정자를 신축하였으나, 옛모습을 찾을 수 없다하여 1979년 해체하고 새설계 아래 도비 8천만원으로 1980년 7월에 옛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조선 성종이 당시 국내 명화가를 시켜 『팔도의 사정(사정-활을 쏘는 활터의 정자) 중 가장 풍경이 좋은 곳을 그려오라』 명하자 그 화공이 영흥(永興)의 용흥각(龍興閣)과 평해의 월송정을 그려 올렸더니, 성종은 『용흥각의 부용(芙蓉-연꽃)과 양류(楊柳-버들)가 아름답기는 하나 월송정에 비할 수 없다』며 월송정과 그 주변의 경치에 감탄했다 한다. 신라시대 화랑들이 이곳의 푸른 소나무와 흰모래 밭에서 웅지(雄志)를 품던 도장으로도 알려지고 있는 월송
경북 울진군은 해안선을 따라 쪽빛 바다가 시원스럽게 펼쳐진 남색바다와 깨끗한 백사장이 인상적이다. 도로변에 우거진 송림이 있고 모래와 물이 깨끗하기로 소문난 곳들이 많다. 또한 아름드리 소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해풍은 해수욕을 하지 않아도 무더위를 식혀줄 만큼 시원하다. 더불어 소나무숲이 우거져 있어 여름피서지로는 더 할 나위없고 수심이 1.2m안팎의 바닦에서 발비비며 건져 올리는 백합채취는 또다른 재미라 할 수 있다. 해변 트레킹등 산책을 즐기며 달빛기행을 해도 좋다. 자료제공=울진군 【글=김종태 부장 · 장기욱 차장 / 사진=김동열 편집위원】 제공=국제일보
경북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 소재 경상북도 민물고기 체험관에서는 물고기의 신비와 자연의 소중함을 알 수 있다. 자연보다 더 큰 학교는 없다. 우리 아이들에게 자연의 소중함과 물고기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다. 인간과 자연의 친화력을 높이고 우리 민물고기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곳- 경상북도민물고기생태체험관은 물고기를 통해 더 큰 자연을 배우는 곳이다. 자료제공=울진군 【글=김종태 부장 장기욱 차장 / 사진=김동열 편집위원】 제공=국제일보
울진금강송 세계유산등재를 위한 범 군민결의대회와 제2회 울진금강송 수호제가 지난 10월 22일 서면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에서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추진위 임영수위원장은 대회사에서 “울진이 가지고 있는 보배 울진금강송을 세계인들에게 자랑하고자 세계유산 등재라는 목표를 두고 뜻을 같이한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울진금강송은 울진 생태문화 관광의 모태이며 영원한 미래 산업이요 자산이다. 우리 당대에서 명품을 만들어 자손만대 물려주자.”고 강조했다. 임광원 울진군수님은 축사에서 “울진 금강소나무의 명품적 가치를 만들어 가기위한 추진위의 민간차원의 역할에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울진금강송 가치 창출역할에 민과 관이 함께 힘을 합하여 활동하는 모습에 국민과 세계인은 감동할 것이며 이 감동은 울진금강송 세계유산등재에 큰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라고 격려했다. 울진금강송은 쇠퇴해가는 소나무를 가꾸어 울진군민들의 기상과 자연을 상징하는 풍치수로서 형질우량한 금강소나 무 목재와 송이생산지로서 수형과 수간이 아름다운 조경수 생산지로서 울진군이 2000년 6월 23일 주최한 「울진소나무림 보전을 위한 국제 심포지움」 에서약 700여명의 울진군민과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에서 서면 하원리까지 15km 에 이르며 기암괴석과 깊은 계곡, 푸른 물은 가히 절경이다. 1979년 12월 11일 명승 제6호로 지정되었으며 여름철에는 계곡 피서지로, 봄·가을은 드라이브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고, 겨울철에는 설경을 구경할 수 있어 사시사철 관광객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한 계곡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가 계곡의 중간지점에 2개소(불영정, 선유정) 있으며, 불영사계곡은 여름철(7∼8월) 한시적으로 비지정 관광지로 지정.운영(수수료 징수)하고 있다. 의상대, 창옥벽, 조계등, 부처바위, 중바위, 거북돌, 소라산 등 온갖 전설이 얽혀 있는 절경지가 많다. 자료제공=울진군 【글=김종태 부장 · 장기욱 차장 / 사진=김동열 편집위원】 제공=국제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