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팔경 중 제일 남쪽에 위치한 월송정(越松亭)은 팔작지붕 주심포, 고상누각으로 고려시대에 창건되었고, 조선중기 관찰사 박원종(朴元宗)이 중건하였으나 세월이 흘러 퇴락되었던 것을 1933년 향인(鄕人)황만영(黃萬英)등이 다시 중건 하였다.
그후 일제말기 제2차 세계대전 중 적기(연합군)내습의 목표가 된다하여 월송주둔 일본군에 의해 철거당하여 폐허가 되었던 것을 1969년 4월 평해·기성·온정면 출신의 재일교포로 구성된 금강회(金剛會)의 후원을 받아 철근2층콘크리트의 현대식 건물로 정자를 신축하였으나, 옛모습을 찾을 수 없다하여 1979년 해체하고 새설계 아래 도비 8천만원으로 1980년 7월에 옛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조선 성종이 당시 국내 명화가를 시켜 『팔도의 사정(사정-활을 쏘는 활터의 정자) 중 가장 풍경이 좋은 곳을 그려오라』 명하자 그 화공이 영흥(永興)의 용흥각(龍興閣)과 평해의 월송정을 그려 올렸더니, 성종은 『용흥각의 부용(芙蓉-연꽃)과 양류(楊柳-버들)가 아름답기는 하나 월송정에 비할 수 없다』며 월송정과 그 주변의 경치에 감탄했다 한다.
신라시대 화랑들이 이곳의 푸른 소나무와 흰모래 밭에서 웅지(雄志)를 품던 도장으로도 알려지고 있는 월송정은 숙종때 송강(松江) 정철(鄭澈)이 이곳을 찬미한 관동팔경 중의 하나로 정자위에서 바라보는 빽빽히 우거진 노송림과 명사십리(明沙十里)의 아름다운 바다풍경은 가히 손꼽을 만한 명승지(名勝地)이다.
월송정은, 한때 달밤(月夜)에 송림(松林)속에서 놀았다하여 월송정(月松亭)이라고 했고, 월국(越國)에서 송묘(松苗)를 가져다 심었다하여 월송정(越松亭)이라고도 했으나, 전해오는 각종 자료에 의하여 월송정(越松亭)이라 불리고 있다.
현재 정면 5칸, 측면 3칸, 26평 규모의 옛 모습으로 복원된 월송정은, 1985년에 안내간판을 비롯 진입로 확·포장과 주차장(350평)이 설치되었고, 1987년에 도비3천만원으로 주변정비를 말끔히 단장했다. 또 1989년에 산책로 1,200m를 조성, 지역주민들의 건강을 위한 장소로도 활용되고 있고, 주변에는 송림을 자랑하는 구산(邱山) 해수욕장이 자리잡고 있으며, 『월송정』현판은 80년 준공당시 최규하 전 대통령의 친필휘호로 새겨져 있다.
자료제공=울진군
【글=김종태 부장 · 장기욱 차장 / 사진=김동열 편집위원】
제공=국제일보